단편 격투
*작품명 - 격투(1994)
*출연
-원신연
-이승훈
-이인섭
-박상현
-전문식
-신재명
*감독/제작/극본/촬영/편집/CG
-함철훈
*프로듀서/특수효과/b카메라/메이킹
-정선일(데몰리션)
*특수분장
-김혜선
*음악/음향효과
-함철훈
NATIVE INSTRUMENTS
LOGIC PRO-X
/Orbiting Platform/Disoriented
/Flute Calling/Desert Heat
*도와주신분
조병옥
전진태
정도안(데몰리션 대표)
*수상경력
충주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제작당시 상황
1994년 6월 어느날 우리는 렌즈교환도 안되는 가정용 S-VHS캠코더를 들고 대본도 없고 변변한 준비도 계획도 없이 강원도로 출발했다. 생각해보면 무모한 시도였는데 연출을 하자는 기본적인 동기로 뭉친 몇몇 영화 선후배들과 현역 스텝들이었다.
당시 우리는 소규모 독립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프로듀서 정선일) 투자사에 데모형식의 영상을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준비하던 장르가 호러SF 지만 데모영상은 당시 맨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게 액션장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변 선, 후배들의 도움을 요청 했고 주인공 원신연(깊은슬픔, 피아노맨 무술감독, 단편 빵과우유, 장편 가발, 구타유발자들, 세븐데이즈, 용의자 감독) , 이승훈(MBC 무술감독, 성룡영화 나이스가이, 썬더볼트 성룡대역) 이인섭 외에 신갈 폐가의 린치장면에서 박상현( KBS , MBC, SBS, 영화 쎄시봉무술감독, '권법형사 차이나타운' 감독), 전문식(방송 아이리스, 영화 킬미 무술감독, 영화 '괴' 감독), 신재명('친구', '명량, '강남1970' , 똥개 등 무술감독)군등이 도와주었고 부분적으로 신갈의 부감장면, 인물 틸업, 정선에서 타이어O.S장면등은 조병옥(김무열주연 개들의전쟁 감독)선배가, 일부 정선격투 장면은 C-VHS타입 B카메라의 정선일 프로듀서가 잡은 컷을 썼다. 원래 형을 조직에게 잃고 하나하나 복수를 해나가는 내용이었는데 특별출연을 해주었던 동료후배들 스케줄이 바뻐 당시 제일 어렸던 이승훈군을 두목으로 바꾸어 신갈 린치장면을 마무리하고 리더격인 이승훈군만 라스트에서 싸우는 것으로 급 변경되었다.
폐광주변 임시건물의 지붕을 뚫어 조명을 대신하고 프로듀서겸 특효(정선일)가 준비한 와이어와 설탕맥주병 세 개, (이중 하나는 운반중 깨졌고 하나는 테스트중 깨졌으며 결국 반쪽짜리 두개가 남았다.) 그리고 몇 개의 보호대..가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오세영(용의자, 왕의남자 무술감독, 어벤저스2 한국측 액션 디렉터)감독이 자신이 아끼는 칼을 빌려주었고 장미빛인생 분장사님께서 숙소에서 피를만들고 찢긴 특수분장을 해주셨다. 식당이나 상점이 멀어서 낮에 탄광 촬영이 들어가면 어두워질때까지 빵과 음료수 몇개로 버티었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신갈, 동해를 거쳐 강원도 정선 폐광에서 마무리 되었다.
후반작업 역시 큰 문제였다.(넌리니어 편집 보급전) 일반 드라마에비해 (액션)컷이 훨씬 많은 이작품을 작업해줄스튜디오를 찾기 어려웠다. 조그셔틀 싱크로 전문 비디오를 구입해서 직접시도를 했는데 자막, CG, 음향등은 생각도 못하고 단순한 컷 편집을 했을 뿐인데 편집에 한 번, 음악에 한 번씩 녹화 때마다 뚝뚝 눈에 보이게 손실되는 화질의 열화로 데모 테입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처참한 지경으로 완성되었다.
7년쯤 지나 넌리니어가 보급된 후 재편집이 시도되었고 그때 6미리로 백업을 받아놓은걸 캡쳐해서 이번이 세번째 재편집이다.
이후 이 영상 데모를 들고 홍콩으로 넘어갔던 이승훈군이 홍금보의 눈에 띄어 홍가반에 편입, 몇 편의 성룡 영화에 출연및 대역을 담당하게되었고
충주무술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또 용인의 모대학에서 영상학과의 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액션에 대해
당시 약간 오버하는 홍콩액션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가능하면 기교를 자제하고 실전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애썼다. 와이어역시 높이와 스피드를 약간 높여주는 정도에만 사용했다. 약속에 의해 액션을 맞추는걸 합을 짠다고 하는데 각자의 합은 본인들이 직접 짜고 나는 포인트 되는 부분의 액션을 일부 넣어주고 흐름만을 잡아주는 식으로 진행했다. 현장에선 화려한데 편집해서 화면으로 보면 어설픈 무술지도가 있고 현장은 지루해도 화면에서는 화려하고 박진감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주는 무술감독이 있는데 후자가 되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우리는 액션에 시간과 공을들이는데 너무 야박하다. 홍콩에서 한달동안 찍을 분량을 한시간안에 만들어 줄것을 요구한다. 다들 액션 현역이고 그런 비슷한 불만들을 공유해서 시너지효과를 본면도 있다고본다.
*영화제 상영 하고도 또 오랜기간이 지나서 편집을 다시한 이유는
격투는 작품 성격상 대사가 없고 이미지컷으로 만들어진 단편이라 음악이 중요했다. 그래서 편집시 느낌을 내기위해 '라스트 모히칸', '미션'등 기존의 알려진 몇 개의 영화음악을 사용했다. 1994년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고 방송이나 드라마, 아시아권 영화들에서도 암묵적으로 기존 음악들을 차용하기도 했던 때라 문제가 될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상업용 단편도 아이어서 작곡자를 따로 쓸 여건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수상했던 모 영화제 쪽에서 dvd 출시를 타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음악 저작권 문제로 무산되었다.
사실 편집이나 촬영은 연관성도 있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혼자 해결 가능하지만 작곡은 분야가 많이 다르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중에 맥쪽에서 음악전문가들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저렴하게 출시되었고 독학을 하다가 영화음악 관련 샘플링 소스와 전자키보드,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구입하여 지금은 전문 작곡까지는 멀지만 배경음과 효과정도는 직접만들거나 조합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첫번째 결과물이 이 단편(격투)이다.
*일인 다역을 많이 하는것 같은데 음악까지
최근 만든 단편 작품 '레퀴엠'에서도 연출, 시나리오, 촬영, 조명, 편집, CG등을 겸했다. 효율성만 따지면 주변에서 나처럼 독학으로 혼자음악까지 하려는 이가 있다면 두 손들고 말리고 싶다. 그돈으로 그분야의 전문가들을 알아두는 쪽이 훨씬 빠르다. 같이 연출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유명인이 된 원신연감독의 예를 봐도 알 수있다. 주변 감독들도 만나면 대부분 비슷한 조언을 해준다. '한우물만 파라'고.
내가 어릴적에 2천년대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기기로 전화도 사진도 영화도 찍고 편집도하고 영화도보고 인터넷으로 온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건 취향의 문제인듯 싶다. 후학들에게 권장하지는 않지만 시도 불가능까지는 아닌 시대에 살고 있고 내가 지금 성공한 감독의 방식을 똑같이 쫓는다고 그 감독보다 나은 감독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 20년후 디지털 시대에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영화가 제작될지 어떤 세상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니 각자 가장 취향에 맞는 방식을 시도하면 될 일이다. 알아두면 나쁜것 보다는 유리한것이 많지않겠나 위안을 삼는다. 선택을 이미 했으니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