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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필름 2.0 인물특집 <격투기 고교>준비 중인 함철훈 감독

날개1963 2005. 11. 7. 01:44


늦깎이 신인감독의 매운맛

 

스턴트맨으로 시작한 무술감독 출신의 한 늦깎이 감독이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판에 들어온 지 22년, 와신상담 함철훈 감독이 <격투기 고교> 3부작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보겠단다.

 

 

격투기 학교가 생긴다고? 올해 초 경기도 양평의 청운고등학교는 신입생이 21명에 불과하고 갈수록 학생수 감소가 예상돼 학교운영위원회와 총동문회,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격투기 분야 체육특기생을 양성하는, 가칭 '청운격투기고'로의 전환계획을 발표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학교가 격투기 고등학교라는 특성화의 길을 택한 것은 학년당 학생 수가 20~30여 명에 불과해 그로 인한 폐교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체육관련 학과나 경찰, 경호직 배출을 위해 태권도,유도,복싱,레슬링,검도 등 특기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해 다시금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학교를 만들어보겠다는 부푼 꿈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했다. 발표와 함께 동문을 비롯 사회 각계의 관심은 지대했다. 도자기 고등학교도 십자수 고등학교도 아니라 격투기 고등학교라니, 자고로 싸움구경만큼 사람 모으는데 좋은 방법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당국의 예산 배정이 없으면 이러한 특성화고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현재 이 고등학교의 미션 임파서블한 계획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가 기획되고 있다. 제목 역시 <격투기 고교>. 무명의 신인감독 함철훈에 의해 무려 3부작으로 계획되고 있다.

 

 

<격투기 고교>는 어떤 영화?

 

이름마저 찬란하다. 격투기 고등학교 이종격투기반 3학년. 잘 못 나가던 선수 출신 코치 선생과 우수한 학생들이 함께 '우주정복'이란 급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내에 이종격투기 마니아가 100만을 넘는다는 소문을 듣고 이종격투기반을 만든 지도 어언 5년, 복싱반이나 태권도반, 유도반등은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상금도 받아오지만 도대체 이놈의 이종격투기반은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는 것에도 벅차 학교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저 멀리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으랏찻차 스모부>나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만화 <이나중 탁구부>스러운 생활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것. 게다가 하루 건너 사고치기 일쑤고 교장은 각종 트집을 잡아 이종격투기반을 없애려 한다. 이런 혼란 속에 종합무술7단, 이름 역시 예사롭지 않는 학생 '최고수'가 전학을 온다. 전학 첫날부터 호기롭게 링 위에 오르지만 반친구와의 스파링에서 모두 지게된다. 자고로 길거리 막싸움과 링 위 싸움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거인 최홍만이 K-1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요즘, 영화와 현실은 사뭇 다르겠지만 어쨌건 영화 속 아이들 역시 이종격투기 스타를 꿈꾸고 있다. 이종격투기반에는 청소년 태껸 명인 출신으로 몰래 성인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바람이와, 선수출신 K-1걸로 데뷔해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소란이, 매일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연수와 만수, 발차기 만큼은 세계 최고수준인 왕발이 등 쟁쟁한 실력자들로 득시글댄다. 여기에 매일 자습만 시키며 '인생도 한방! 주먹도 한방!'을 외쳐대는 실력 미상의 괴짜 코치가 있다. 하지만 3년동안 아무 시합에도 나가지 못한 아이들은 지쳐있고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코치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고수가 전학을 오면서 상황은 점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폭력을 증오하는 고수 아버지는 고수를 퇴학시키는 조건으로 학교에 1억원을 기부하고, 교장은 그 돈으로 전국 청소년 이종격투기 대회와 프로시합 시범경기를 유치한다. 싸우면서 크는게 아이들이지만 정말 이 아이들은 싸우는게 일이다. 그렇게 영화는 2부와 3부로 흘러간다.

 

얼핏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2001), 혹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웃찾사>의 '화상고'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격투기 고교>는 현실의 사건과 더불어 흥미로운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느낌을 가미할 것이다. 그래야 함철훈 감독 자신이 노리고 있는 영화의 블랙코미디적인 성격과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과잉과 절제, 그 사이에서 힘든 줄타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배우 캐스팅과 액션 연출은 '무술감독 출신'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활짝 열어놓을 심산이다. "가령 영화 속에서 합기도를 수련해야 한다면 그와 다른 무용을 하는 하는 사람을 쓰고 싶다. 어떤 무술을 너무 깊이 익히면 자기 스타일이 고정되고 변형이 어렵다. 그래서 영화에 맞는 동작들을 끌어내기 힘들 수 있다. 대회에서나 어울릴 법한 시합용 발차기는 사실 영화 속에서 굉장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때문이다. 철저하게 준비 안하네,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웃음) 연출 같은 경우도 현장에서 결정되는  부분이 많을 거다. <올드보이>의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신 같은 경우도 치밀하게 콘티를 다 나눴다가 현장에서의 느낌을 써서 롱테이크로 간 걸로 알고 있다. 그만큼 액션영화는 당일 현장에서 주변의 지형지물과 더불어 배우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미리 결정하고 간다든 건 그만큼 제약을 두고 시작하는 거라 본다."

 

 

정우성 대역, 뒤늦게 감독되다.

 

'격투기의 왕'이 되려는 아이들의 몸부림만큼이나 함철훈 감독도 지난 한 인생사를 보냈다. 이연걸,견자단과 같은 1963년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액션영화를 꿈꿨다. 80년대초, 그러니까 스무 살도 되기 전 그는 한홍합작, 대만 합작 영화의  스턴트 배우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무술영화 감독 혹은 배우로서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창대한 시작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무사로 출연해 옷을 하루에 열 번도 더 갈아입고 죽기로는 수십 번도 더 죽었다. 죽는 건 영광이었다. 그것도 연기력이 뛰어난 단역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저 멀리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할 때, 그는 멋지게 죽어 쓰러지며 단 몇 초만이라도 주인공이 된 것처럼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것과 별개로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저 그런 액션영화 취급만 받았다. 조건은 더 열악했다. 두어 달 영화 한 편 쫓아다니는데 최소한의 식사와 최소한도 안 되는 차비, 슬슬 회의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우를 꿈꿨으나 완성된 영화에 등장한 자신의 모습도 충격이었다. "내가 정말 저렇게 생겼다니, 잘생기고 실력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날개를 접은 채 군대를 갔다.

 

그래도 그 꿈이 어디가랴. 제대를 하고서도 영화에 대한 꿈, 나만의 액션영화에 대한 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영화계는 이렇다 할 액션영화란 게 없었다. 결국 그는 1987년 MBC 전속 스턴트 겸 무술감독으로 등록해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TV드라마<1.5>에 출연했던 정우성, <여명의 눈동자>에 어린 병사로 출연했던 임창정, 쇼 프로그램<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결정했어!'의 이휘재 대역은 그의 몫이었다. "실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당시 오래 운동하던 분들이 대부분 키가 작았다. 그런데 정우성이나 이휘재 같은 배우들은 키가 컸고. 정우성이 차를 피해 넘는 장면 같은 거 내가 했다. 특히 이휘재는 상대역 이소라와 함께 스턴트맨으로 나왔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 역시 힘든 스턴트맨이었기에 아직도 그 에피소드가 기억이 많이 난다." 그뿐만 아니라 <모래시계><적색지대>등 많은 TV드라마에서 스턴트맨 겸 무술감독 생활을 했다.

 

 

박영훈, 원신연 감독과의 인연

 

<중독><댄서의 순정>의 박영훈 감독, <가발>의 원신연 감독이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다. 세 영화 모두에서 함철훈 감독은 스턴트, 액션디렉터를 맡아줬다. 바로 새로운 한국 액션영화를 꿈꾸었던 과거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소룡을 좋아해 쌍절곤을 달고 살던 박영훈 감독과는 고등학교 친구 사이다. 이소룡보다 성룡을 좋아했던 함철훈 감독은 그와 같은 반도 아니었지만 액션영화에 대한 관심때문에 그와 쉽게 친구가 됐고 종종 약수터에 올라 함께 운동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액션영화로 의기투합하자고 약속했다. 조금 어린 원신연 감독과는 제대후 '운동하면서' 만났다. 영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해박했던 원신연 감독과는 직접 이것저것 테스트 촬영도 해보고 편집도 하면서 많은 액션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액션 영화감독을 꿈꾼다는게 당시 한국영화 현실에서는 참으로 무모한 계획이었다. "박영훈, 원신연 두 사람 다 무술 유단자들이다. 원신연 감독은 <옹박>의 토니 쟈가 선보였던 기술들도 이미 한창 때다 할 줄 알았다."

 

이후 박영훈 감독은 공부를 더하겠다며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산부인과>(1997)등 박철수 감독의 연출부로 충무로 수업을 쌓았다. 한편 원신연 감독은 액션영화와는 거리가 좀 먼 단편영화의 세계로 발을 디뎌 <빵과 우유>(2003)등 주목받는 작품들을 만들어냈고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사람 모두 액션영화는 아니지만 장편 감독 데뷔를 했고 언제든 멋진 액션영화를 선보이리라 꿈꾸고 있다. 최근 박영훈 감독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악당 보스로 출연해 주인공 김래원과 액션 대결을 펼쳤고, 원신연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구타유발자들>을 준비중이다. 함철훈 감독은 <구타유발자들>에도 스턴트 액션 디렉터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렇게 함철훈 감독은 그들 중 가장 마지막 차를 타게 됐다. 힘든 시절을 지나 최근 여러 결실을 맺게 된 그들을 보면서 함철훈 감독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끝까지 액션영화의 자리에 남았던 사람으로서 정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뒤늦은 데뷔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박영훈 감독은 그에게 "내가 <중독>만들 때 현장에서 최고 연장자 였는데 이번에는 네가 그 기록을 깨겠구나." 라고 말했다.




한국 액션영화의 매운 맛 보라

 

함철훈 감독은 '한국 액션 스턴트 영화 만들기(kamunion.com)'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트에는 자신이 지금껏 참여하고 연출했던 작품들의 제작기와 더불어 홍콩 무협영화, 과거 한국 액션영화에 대한 여러 글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격투기 고교> 연출을 맡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사이트를 통해서다. 과거 박영훈 감독의 미완성 검술 액션영화 <정인>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제작기를 올려놓은 것을 본 프로듀서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중간 허리가 없는 한국 액션영화에 대한 애착이 크다. "다들 <옹박>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에 <옹박>의 토니 자처럼  할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옹박>처럼 토니 자한테 맞아줄 수 있는 배우가 없다. 그건 그냥 개런티를 얼마 줄 테니 맞아달라는 문제와 다르다. 뭐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액션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몸 좋고 실력 좋은 아이들이 액션배우 쪽이 아니라 다들 B보이(브레이크 댄서)쪽으로 빠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격투기 고교>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액션영화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걸 수반한다."

 

함철훈 감독은 홍금보와 원화평, 유가량과 서극 같은 액션 스타일을 좋아한다. 특히 홍금보의 경우 성룡보다 파워풀 하기에 매력적이다. "<성료의 썬더볼트>처럼 홍금보가 남을 보좌해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성룡보다 현대물을 먼저한 것도 그고, 색다른 편집 등 액션영화 문법 실험도 그가 더 많이 했다. 그건 아무래도 본인의 몸이 롱 테이크를 선호하는 성룡과 원표 등 칠소복 동료들처럼 날렵하게 따라가 주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연구를 거듭했을 거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직 한국영화에는 리얼리즘과 기본적 공식에 대한 강박이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극감독의 <서극의 칼>이나 <칠검>을 보면 영화 문법에 대한 무시와 새로운 실험이 있다. 그런 계속된 실험들이 무술영화의 진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드라마 영화든 액션영화든 간에 문법 무시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하면 참신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일개 무술감독이나 액션배우들이 하는 얘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풍토가 된 것 아니겠나. 그런 차별과 엄숙 속에 한국 액션영화가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함철훈 감독은 3고까지 나온 <격투기 고교> 시나리오를 천성일 작가와 함께 매만지고 있다. 손재곤 감독이 HD카메라로 맹촬영중인 <달콤, 살벌한 연인>에도 무술감독으로 참여하며, 자신도 HD로 작업할  예정이기에 현장 공부를 더 하려 한다. 그래서 빠르면 오는 12월, 늦어도 내년 1월경 <격투기 고교>를 크랭크인할 생각이다. 그는 새로운 액션과 카메라 앵글로 색다른 영화를 자신하고 있다.

 

 

주성철기자/사진 김춘호 기자


 

 

 

출처 : FILM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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